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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등록금 1000만원시대]“가장 무서운게 등록금 고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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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솟는 대학 등록금은 서민들에겐 저승사자나 다름없다. 가정경제를 무너뜨리고 멀쩡한 중산층을 채무자로 전락시킨다. 꿈과 희망을 앗아간다.

“남은 건 빚더미뿐입니다. ” 경북 포항 근교에서 부추농사를 하는 김기수씨(51·포항시 남구 연일읍 중명리)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등록금 고지서다.



고지서가 날아오기 며칠 전부터 끙끙 앓는다. 밥맛을 잃는다. 돈을 마련할 생각을 하면 끔찍해서다.

김씨는 서울과 경주의 대학에 다니는 두 딸과 고교 2학년인 막내 아들을 두고 있다. 5000평의 밭에 부추를 재배하며 ‘성공한 농사꾼’이라는 소리를 듣던 김씨는 큰딸(21)이 서울로 유학길에 오르고, 지난해 둘째딸(19)이 경주의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 ‘고난의 길’로 접어들었다.

김씨는 인건비를 한푼이라도 줄이기 위해 부인과 함께 매일 새벽 5시부터 저녁 7시까지 14시간 이상 중노동을 한다. 큰딸이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연간 몇백만원씩 저축하면서 ‘행복한 노후설계’를 했지만 지금은 꿈도 꾸지 못한다. 김씨는 “큰딸이 서울에 있는 명문대학 전자공학과에 합격해 기뻐할 때까지만 해도 대학생 한명을 서울로 유학보내는 것이 이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다”며 혀를 찼다.

김씨의 연수입은 대략 3000만원. 이 가운데 3분의 2인 2000만원이 큰딸 밑으로 들어간다. 1000만원이 넘는 등록금에 기숙사비, 학원비, 용돈, 교통비, 책값 등을 합친 금액이다. 집에서 통학하는 둘째딸과 실업계 고교생인 막내 아들의 교육비로 1500만원 정도를 지출한다.

3남매 교육에 연 3500여만원이 드는 것이다. 교육비로만 따져도 가계수지는 600만원 이상 적자가 난다. 월 200만원가량인 생활비는 빚을 내 해결할 수밖에 없다. 매년 농협 영농자금과 생활안정자금, 일반 은행의 가계 대출 등 낼 수 있는 빚은 다 얻고 있다.

김씨는 큰딸이 대학에 들어간 이후 1억원을 빚졌다. 원금과 이자를 합친 돈이다. 아이들이 모두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얼마나 빚을 더 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김씨는 “매년 등록금은 왜 그렇게 오르는지 모르겠다”며 “올해는 기숙사비까지 오른다니 힘이 쫙 빠진다”고 하소연했다. 이제는 꿈도 희망도 없다. 평당 3만원인 밭을 모두 팔아도 빚을 갚기 어렵다. 김씨는 “노후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애들을 서울에 있는 대학에 보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모씨(54·서울 은평구·철물점 운영)는 자신을 ‘대출인간’이라고 부른다. 연 2000만원 가까운 대학생 두 자녀 등록금 때문에 지난 2년간 정부로부터 학자금 대출을 4번 받은 것을 빗댄 것이다. 하씨는 “올해는 정부의 학자금 대출이자가 7%를 넘는다고 하던데 그렇게 되면 월 이자만 해도 몇십만원쯤 될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대기업이나 관공서에 다니는 이웃들이 한없이 부럽다. 자녀 학비를 무상으로 지원받기 때문이다. 하씨는 “대학졸업한 조카가 대기업 인턴사원이 됐는데, 한달에 고작 70만원을 받는다”며 “앞으로 우리 애들도 벌이가 그렇다면 대출금을 갚을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학업을 중단하고 ‘88만원세대’로 생활전선에 뛰어드는 학생도 적지 않다. 부산 사립대학 2학년인 정모씨(21·여)는 얼마전 휴학계를 내고 마트에 일용직으로 취직했다. 상조회 회원모집 일을 하며 학비를 보조하던 어머니가 지난 연말 고객을 유치하러 나갔다가 계단에서 미끄러져 다리를 다치면서 등록금 마련이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정씨는 “가족 희생의 대가로 공부한다는 것이 마음이 편치 않아 학업을 미루기로 했다”고 말했다.

사업에 실패하고 아내와 이혼까지 한 박영훈씨(52·전북 전주시)는 얼마 전 전북지역 사립대학 3학년인 큰딸에게 휴학을 권유했다. 연 900만원의 등록금 등 1500만원에 이르는 교육비를 부담할 방법이 없었다.

박씨의 심경을 더 착잡하게 만든 것은 둘째딸(20)이었다. 고교를 졸업한 둘째딸이 “언니 학비를 벌겠다”며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취업전선에 나선 것이다. 박씨는 “죽고싶은 심정이었다”며 “대학 등록금이 야속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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